
장재형목사
성탄의 사랑을 믿는데도 왜 익숙한 죄 앞에서는 다시 무너질까? 그뤼네발트가 그린 〈이젠하임 제단화〉에는 성탄과 십자가, 부활의 장면이 함께 담겨 있어, 그리스도의 오심을 구원의 여정 속에서 생각하게 한다. 장재형목사(미국 Olivet University 설립)의 로마서 8장 3~13절 설교는 성탄의 의미를 그 구원이 오늘 우리의 삶에 이루는 변화와 연결한다.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에서 죄를 담당하신 은혜로 드러나고,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자유와 순종으로 이어진다.
율법이 할 수 없던 일과 성탄의 사랑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도 시기하는 마음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남을 낮추는 말이 잘못임을 알면서도,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심이 앞설 때가 있다. 무엇이 옳은지 아는 것과 그것을 행할 능력을 갖는 것 사이에는 깊은 간격이 있다. 로마서 8장 3절은 이 간격을 인간의 연약함과 연결해 설명한다.
율법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보여 주고 죄를 드러낸다. 그러나 죄에 매인 인간은 그 뜻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며, 율법 자체가 그를 죄의 지배에서 건져 내지는 못한다. 로마서 7장의 탄식처럼, 잘못을 선명하게 깨달을수록 자신의 무력함도 깊이 느낄 수 있다. 더 엄격한 기준을 세우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여기에 있다.
바울은 바로 그 지점에서 “하나님은 하시나니”라고 선언한다(롬 8:3). 하나님은 아들을 사람의 몸으로 보내시어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던 죄의 문제를 담당하게 하셨다. 요한복음 1장 14절이 전하는 성육신, 곧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사건의 목적이 여기에 있다. 성탄은 죄에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신 사랑의 사건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는 말씀은 그 사랑의 출발점을 분명히 한다(요 3:16). 죄인이 먼저 충분히 나아진 뒤에야 하나님을 향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 실패할 때마다 믿음도 움츠러들기 쉽다. 성육신은 우리의 무력함을 이미 아시는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여셨음을 보여 준다. 그 사랑을 따라 예수의 생애를 바라보면, 성탄의 기쁨은 죄를 담당하실 십자가까지 이어진다.
십자가의 용서가 열어 준 자유의 방향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신 길은 우리 죄를 위한 희생으로 이어졌다. 로마서 3장 24~25절이 말하는 구속과 죄 사함에는 그분이 자신을 내어주신 대가가 놓여 있다. 우리가 값없이 받는 은혜를 위해 주님은 실제로 고난과 죽음을 감당하셨다. 그러므로 성탄의 사랑을 깊이 묵상할수록 받은 용서를 귀히 여기고, 죄를 가볍게 여기던 태도도 돌아보게 된다.
장재형 목사는 이 사랑을 로마서 8장 1절의 정죄함이 없다는 선언과 연결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에 대한 심판을 담당하셨기에, 그분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길이 열렸다.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도 그 은혜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고, 죄를 감추던 태도에서 벗어나 용서를 구할 수 있다. 정죄에서 풀려난 자유는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마주하며 회개할 용기를 준다.
이 자유의 목적은 로마서 8장 4절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하나님은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신다. 이 설교는 그 요구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설명한다. 은혜를 받은 사람의 자유에는 누군가를 섬기고, 자신의 시간과 수고를 사랑을 위해 사용할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여기서 구원과 순종의 순서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과 성령의 도우심이 먼저이며, 순종은 그 은혜에 응답하는 삶이다. 잘한 일이 쌓일 때에는 자신을 높이기보다 은혜에 감사하고, 부족함을 발견할 때에는 도움을 구하며 배워 갈 수 있다. 이러한 순서는 죄를 방치하지 않으면서도 실패한 자신을 끝없이 정죄하지 않도록 믿음을 붙들어 준다.
육신의 생각에서 성령의 생명과 평안으로
성령을 따르는 삶은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는지와 깊이 연결된다. 바울은 육신을 따르는 사람과 영을 따르는 사람이 각각 육신의 일과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말한다(롬 8:5). 이어지는 말씀에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드러난다. 따라서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에 마음과 선택을 맡기는 삶의 방향을 가리킨다.
예컨대 다른 사람의 좋은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이 뒤처졌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 그 비교를 오래 붙들면 상대의 수고를 인정하기 어려워지고, 작은 흠을 찾아 말하고 싶어질 수 있다. 마음속에서 자라던 시기가 말과 관계를 바꾸어 놓는 것이다. 이때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살피는 일은 죄가 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정직하게 보는 일이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방향을 바꿀 수 있을까. 로마서 8장 9절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죄를 깨닫게 하시고 순종할 힘을 주시는 성령이 계시다. 자신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만 살피던 시선을 하나님께 돌릴 때, 죄와 싸우는 동안 자신을 도우시는 분을 의지하게 된다.
장재형 목사는 성령이 주시는 기쁨과 은혜가 죄를 거부하는 삶을 가능하게 한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헤아릴수록 다른 사람보다 앞서는 데서만 찾던 만족을 돌아보게 되고, 이미 받은 은혜 안에서 감사할 이유를 발견한다. 사랑과 온유, 절제의 열매는 이렇게 일상의 말과 행동으로 자라난다(갈 5:22~23). 생명과 평안은 하나님께 응답하며 그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삶과 연결되어 있다(롬 8:6).
죄를 끊는 오늘을 붙드는 부활의 소망
바울은 우리가 육신에 빚진 자가 아니므로 육신대로 살아갈 의무가 없다고 말한다(롬 8:12). 오래된 욕심이 강하게 느껴진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 욕심이 선택을 결정하게 둘 필요는 없다. 이어지는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는 권면은 죄를 끊는 단호함과 성령을 의지하는 믿음을 함께 요구한다(롬 8:13). 이미 받은 자유를 실제로 사용하라는 부름이다.
바울이 육신을 따라 사는 길을 죽음과 연결하는 것은 죄를 가볍게 둘 수 없음을 보여 준다(롬 8:13). 은혜를 안다는 이유로 익숙한 욕심을 그대로 허용한다면, 자유의 의미를 삶에서 놓치게 된다. 성령은 우리가 죄를 미워하고 그 지배에서 벗어나도록 이끄신다. 그 인도하심에 응답하는 일에는 자신의 습관을 살피고 죄로 향하는 행동을 중단하는 수고가 따른다.
앞서 살펴본 시기의 문제도 여기에서 구체적인 회개로 이어질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상대를 낮추고 싶었던 마음을 인정하고, 그 사람의 기쁨을 함께 기뻐할 수 있도록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다. 그의 성취를 깎아내리는 말을 멈추고 진심을 담아 축하하는 선택은, 기도한 내용을 삶으로 옮기는 한 걸음이 될 수 있다. 회개는 죄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죄를 따르던 행동을 바꾸어 가는 일이다.
말씀과 기도, 예배와 공동체의 교제는 이 걸음을 지속하도록 돕는다. 말씀 앞에서 자신에게 익숙한 핑계를 살피고, 기도하면서 돌이킬 힘을 구하며, 함께 믿는 사람들과 사랑을 실천하는 법을 배운다. 죄를 끊는 수고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은 이 과정에서 함께 깊어진다. 성령을 의지한다는 고백은 그렇게 구체적인 시간과 관계 속에서 모습을 얻는다.
이 길에서도 유혹과 갈등은 계속될 수 있다. 넘어졌을 때에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여 회개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다시 구할 수 있다. 실패를 돌아볼 때 무엇이 반복되었는지 살피면서도, 하나님께 돌아갈 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의 연약함이 신앙의 마지막 결론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다.
그 소망에는 몸의 부활에 대한 약속도 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시겠다고 약속하신다(롬 8:11).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의 미래를 붙드시기에, 성도는 죄와 싸우는 중에도 소망을 품는다. 성탄과 십자가, 부활은 오늘을 살아갈 힘과 앞으로 완성될 구원을 함께 바라보게 한다.
처음의 질문 앞에 다시 서면, 성탄은 죄와 싸우는 사람이 의지할 분을 보여 준다. 우리를 위해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은 성령으로 순종을 도우시며, 넘어졌을 때에도 회개하며 살아갈 길을 열어 주신다. 그 사랑을 기억하는 오늘, 나는 어떤 죄의 습관 앞에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사랑을 선택할 수 있을까?
장재형 박사는 현장 선교와 디지털 미디어 사역을 통해 세계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해 왔으며, 그 사역의 열매로 지상명령에 헌신하는 많은 이들이 세워졌다. 이러한 선교적 비전을 바탕으로 올리벳은 처음에 선교사 훈련을 위한 작은 교회 학교로 출발했다. 이후 보다 체계적인 신학 교육과 선교 인재 양성을 위해 2000년 로스앤젤레스와 서울에 올리벳신학대학 및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학교가 성장하면서 장 박사는 2004년 샌프란시스코에 Olivet University를 공식 설립했다. 올리벳은 샌프란시스코의 다양성과 역동적인 환경 속에서 신학을 중심으로 음악, 저널리즘, 예술디자인, 기술 분야까지 교육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또한 윌리엄 와그너 박사를 비롯한 교수진을 영입하며 교육 역량을 강화했고, 2005년에는 옛UC 버클리 다운타운 익스텐션 캠퍼스로 이전해 대학으로서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했다.
2006년 장박사는 선교 사역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총장직을 데이비드 제임스 랜돌프 박사에게 이양하고, 국제총장으로서 세계 선교 사역을 이끌었다. 이후 Olivet University는 2009년 기관 인증을 받았으며, 언어교육대학과 경영대학을 추가하고 학위 과정과 국제 협력 관계를 확대하면서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독교 교육기관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장재형목사 공식 홈페이지: www.davidjang.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