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일보=임태준기자] 백두산 일대에서 탈북 도중 조난됐다가 구조돼 한국에 들어온 조영남 씨(50)가 간암 치료를 받으면서 홀로 아들을 키우고 있다. 국내 정착 이후 배송과 자영업, 화물 운송 등으로 생계를 이어왔지만 사업 실패와 차량 고장에 따른 채무까지 겹치면서 치료와 양육을 함께 감당하고 있다.
동아일보와 남북하나재단 공동기획에 소개된 조 씨는 2011년 12월 31일 저녁 다른 네 명과 함께 북한을 떠났다. 얼어붙은 압록강 상류를 건너 중국에 도착했으나 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공안의 검문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갔다. 일행은 주변 마을을 찾으려 했지만 깊은 눈과 추위 속에서 길을 잃었다. 백두산의 1월 새벽 체감온도는 영하 40도를 오르내렸다.
조 씨의 증언에 따르면 일행은 먹을 것과 잠잘 곳을 제대로 구하지 못한 채 며칠 동안 산을 헤맸다. 17세 소년은 정체불명의 열매를 먹은 뒤 숨졌고, 25세와 24세 자매는 산속에서 서로 끌어안은 채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인솔자도 숨졌으며 조 씨 역시 의식을 잃었다. 잣나무밭을 관리하던 한족 노인이 쓰러진 사람들을 발견했을 때 살아 있던 사람은 조 씨뿐이었다. 조 씨는 구조된 뒤 나흘 만에 의식을 되찾았고, 노인 부부의 보살핌을 받으며 오두막에서 3개월을 지냈다.
이 과정에서 입은 부상도 남았다. 산장에서 공안을 피해 창문으로 빠져나오다 손에 유리가 박혀 신경을 다쳤고, 오른손 손가락 두 개를 펴지 못하게 됐다. 북한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던 조 씨는 한국에 온 뒤 신경 복원 수술에 800만 원이 든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비용을 마련하지 못했다. 동상 흔적도 남아 겨울이면 귀에서 진물이 흐른다.
회복한 뒤 과거 중국에서 일할 때 알게 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한국행을 준비했다. 2012년 여름 다른 탈북민 여섯 명과 함께 출발해 중국을 횡단하고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수개월간 감옥 생활을 한 뒤 같은 해 12월 25일 한국에 입국했다. 조사와 하나원 과정을 마친 뒤 2013년 5월 인천의 임대주택에서 정착 생활을 시작했다. 공단이 가까이 있다는 말을 듣고 택한 정착지였다.
처음에는 박스 제조업체에 취직해 1t 화물차로 제품을 납품했다. 3년간 모은 돈은 3000만 원을 넘었다.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가게를 열었지만 2년 만에 빚을 안고 사업을 접었다. 다시 택배와 대리운전, 용접, 중장비 운전 등 여러 일을 하며 채무를 갚았다.
함께 살던 탈북민 연인은 코로나19 봉쇄로 북한의 가족 네 명이 3개월 사이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다. 아들이 태어난 뒤에도 돌봄이 어려워지자 조 씨는 생후 8개월 된 아들을 안고 집을 나와 홀로 키우기 시작했다. 아이 엄마는 여전히 극심한 대인공포증으로 집 밖에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조 씨는 생활비를 보태고 있다.
아들을 돌보며 일할 방법으로 택한 것이 화물 운송이었다. 아들을 운전석 옆에 태우고 다니며 분유를 먹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22년에는 6800만 원짜리 7.5t 중고 트럭을 전액 할부로 구입했다. 거의 차에서 먹고 자며 하루 2~3시간만 자고 운전했다. 평일 위탁가정에 아이를 맡기는 데 드는 180만 원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잦은 고장이 생계를 압박했다. 3년간 정비일지에 기록된 수리비만 4500만 원에 달했다. 차를 수리하거나 운송 일감이 없을 때는 보험설계사 일로 수입을 보탰다.
2024년 1월 1일에는 대전에서 울산으로 식품을 배송하던 중 차량이 고장 나 도로에서 9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견인비 270만 원과 배송 지연에 따른 2000만 원 넘는 연체료 부담이 이어졌고, 개인회생을 신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트럭도 캐피탈사로 넘어갔으며 추가로 매달 50만 원씩 60개월을 갚아야 한다.
지난해 12월에는 피로와 무기력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간암 2기 진단을 받았다. 올해 2월 수술을 받았으며 이후에도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육체노동이 어려워 보험설계사 일을 하면서 자신의 치료비와 아들의 양육비, 아이 엄마의 생활비를 감당하고 있다.
조 씨는 공동기획 인터뷰에서 “제가 쓰러지면 아들을 키울 사람이 없어요”라며 “매일 아침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만 아버지 역할을 하게 해달라고 빕니다”라고 말했다.


